KDI ‘확장 국면’ 선언, 한은의 딜레마는 오히려 깊어졌다

핵심 요약: KDI가 성장률 전망을 2.5%로 올리며 확장 국면을 선언했지만, 그 성장의 실체는 반도체 수출에 편중돼 있다. 에너지 수입 비용 급등과 원화 약세가 내수 물가를 자극하는 구조에서,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릴 명분도·올릴 여유도 없는 교착 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반도체가 만든 성적표, 내수가 체감하지 못하는 확장

KDI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5%로 상향하며 “추가 재정 부양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밝힌 근거는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1개월간 코스피 시총은 약 4,500조원 급증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상승분의 56%를 차지했다. 반도체 수출이 경상수지 흑자를 지탱하며 거시 지표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호조가 고용과 소비로 퍼져나가는 속도는 더디다. 반도체 산업의 고용 유발 계수는 제조업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수출 대기업 실적이 자영업자와 가계의 지갑까지 채우기엔 구조적 시차가 존재한다.

한국은행의 삼중 제약 — 환율·물가·가계부채

한은의 고민은 연준보다 복잡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00원 턱밑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면 원화 약세를 가속시키고, 수입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경로를 열어준다. 반대로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를 유지하거나 올리면, 1,9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이 내수를 더 짓누른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급등이 겹치면서 수입물가 압력은 한은의 재량 영역 밖에서 형성되고 있다. 정책 도구로 통제할 수 없는 공급발 인플레이션이 금리 경로를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셈이다.

전망 — ‘확장’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변수

KDI의 확장 국면 진단이 유효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하반기에도 지속돼 경상수지 방어막을 유지하는 것. 둘째, 에너지 수입 비용 증가가 경상수지 흑자를 잠식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반도체가 벌어오는 달러를 원유가 빨아들이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어, 중동 정세가 장기화될 경우 확장 국면의 체력은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 한은은 당분간 ‘관망적 동결’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지만, 그 동결이 정책적 판단인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무력함인지는 구분해야 할 시점이다.

결론

성장률 숫자는 올라갔지만, 한국 경제의 체질은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 반도체 한 축에 의존한 확장이 에너지 역풍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가 하반기 한국 경제의 진짜 시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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